[박형근의 테슬라 딥다이브 2]
자동차 회사인가, AI 기업인가?

아직 실수가 있지만 거의 완성되었다는 평가도 받는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며, 이런 소프트웨어를 완성하기 위해 칩부터 설계하고 컴퓨팅 하드웨어도 직접 제작하는 회사. 전기차 사업과 밸류체인을 수직 통합한 데 이어 AI와 에너지 저장 장치 개발, 위성 통신 사업까지 수평으로도 확장하는 테슬라. 주요 언론과 유튜브 등을 통해 친절한 테슬라 삼촌으로 알려진 박형근 연구원이 테슬라가 그리는 미래와 현재, 나아가 여러 혁신 기술의 상용화, 대중화 가능성 등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연재합니다. - 버핏클럽


지난 2022년 9월, 테슬라는 AI데이 2를 개최했습니다. 대학 실험실에서 만든 듯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해 첫 무대를 장식했습니다. 로봇을 구성한 부품이 덮이지 않은 채 훤히 드러났고, 전선들도 보기 불편하게 여기저기 꼬여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실험 출품작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로봇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격론이 일어났습니다. 첫 AI데이에서는 장난스럽게 사람에게 로봇 코스튬을 입혀 춤추게 했지만, 실제 콘셉트를 만들고 8개월여 만에 두 발로 걷고 인사까지 건네는 로봇을 제작했으니 테슬라의 개발 속도가 무서울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1~2년이 지나면 얼마나 진화할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첫 AI데이 - 범블비 - 옵티머스 1세대(출처: Tesla Live)

더군다나 테슬라는 처음부터 로봇 대량 생산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카페에서 보는 바리스타 로봇과 치킨집에서 보는 튀김 로봇은 최근 일반에 투입되기 시작한 협동 로봇입니다. 이러한 협동 로봇은 6축 관절 로봇 암(robotic arm) 형태인데, 각종 센서나 집게에 해당하는 엔드 이펙터(end-effector)를 제외하고도 2만 달러가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테슬라는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완전한 인간 형태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2만 달러대에 내놓겠다고 합니다. 제작 원가를 현실화하기 위해 부품을 직접 설계·제작했고, 원가 절감을 위해 부품 공용화 전략을 소개했습니다. 어깨, 팔꿈치, 무릎 등 관절을 가동하기 위한 전신 액추에이터(actuator: 유체 또는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기계적인 작업을 하는 기기) 28개를 단 6개 디자인으로 공용화했습니다. 가장 핵심이 되는 손은 한 손에 모터 6개로 관절 11마디를 제어해서 사람의 손에 가까운 동작들을 구현합니다.

옵티머스 2세대(출처: Tesla)

AI데이 2 당일 매우 어설픈 모습을 보였던 로봇은 현재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서 옵티머스 2세대 모델까지 개발되었습니다. 이 모델은 달걀을 집고 옷을 개는 등 매우 부드러운 동작을 구현할 수 있고, 고관절 기능과 발가락 관절을 추가해서 보행 속도도 사람의 보행 속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기존 로봇에는 대부분 컴퓨터 프로그램에 사용하는 ‘If(조건) ~ then(행동)’과 같은 하드코드가 들어가기 때문에, 결국 수없이 다양한 환경에 대한 인간의 판단을 개입해야 합니다. 테슬라 옵티머스가 강력한 것은 테슬라 전기차의 자율주행 기술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전 센서(카메라)를 활용해 주변 환경을 정확히 인지하고 이동 경로를 계획해 보행합니다.

또한 임무가 주어지면 AI 학습을 통해 행동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깁니다. 예를 들어 ‘A박스에 있는 부품을 B박스로 옮겨주세요’ ‘C볼트를 D너트에 돌려 끼워주세요’와 같은 명령을 사전 수행 코드 없이 스스로 판단하는 학습을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AI 학습을 ‘e2e(end-to-end)’ 방식이라고 합니다. 데이터 입력에서 로봇의 행동 출력까지의 과정에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 AI 모델이 결괏값을 예측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옵티머스 휴머노이드 로봇은 행동 범위를 통제할 수 있는 테슬라 전기차 공장에 도입해서 학습량을 늘린 다음 몇 년 안에 산업 현장에서 활용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활용 분야로는 택배 자동차에서 내려 집 문 앞까지 배달하는 라스트 마일(last mile) 배달 등이 예상됩니다. 궁극적으로는 장기간 사람과 근접한 환경에서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함으로써 안전성이 검증되면 집안일을 돕는 반려 로봇의 단계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AI의 발전이 결국 로봇과 자동차 같은 디바이스의 지능화를 앞당기고 있습니다. 현재 자율주행 기술에 e2e 방식을 도입한 테슬라의 FSD 베타(beta) v12에도 이러한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FSD 베타는 프로그래머의 판단이 어느 정도 개입된 AI 신경망을 활용했는데 현재는 전적으로 AI 학습에 의해 상황 판단을 하는 e2e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FSD 베타 v12를 체험한 사람들은 기존 자율주행보다 한층 불안감이 사라진 주행을 한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이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예상치 못한 예외 상황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뮬레이션으로 사고 상황을 연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실제 주행 데이터도 모든 사고 상황을 수집해 학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들이 예외 상황을 일일이 설계, 입력하는 것보다 AI가 특정 상황에서 스스로 가장 나은 해결책을 찾게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AI 컴퓨팅 수직통합

최근 챗GPT를 통해 일반인들도 AI의 발전 속도가 우리 실생활의 많은 부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픈AI가 공개한 소라(Sora)는 영상 제작자는 물론 많은 사람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언어로 표현한 텍스트 입력값에 대해 현실감 있고 매우 완성도 높은 영상을 결괏값으로 돌려주는 멀티모달(multi modal: 언어, 영상, 이미지, 사운드 간 입력과 출력 경계를 넘나드는) AI는 모바일 기기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로봇에 적용되는 온디바이스AI(On-device AI)의 시대를 열어줄 것입니다.

오픈AI의 Sora로 제작한 영상(출처: 오픈AI)

소라가 생성한 영상 중 일부는 물리 세계를 구현하는 데 오류가 있지만 도심을 걷는 여인, 눈 속에서 뛰노는 강아지 등 배경과 인물이 우리 인지 체계에 이질감 없이 현실 세계를 매우 잘 반영합니다. 소라의 영상을 본 일론 머스크는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여력이 없어서 실사 영상을 구현하는 데 집중하지 않았을 뿐, 우리도 이미 물리 세계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테슬라는 이미 실제 도로 주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하는 것 외에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실 물리 공간을 재현해 다양한 상황에 대한 학습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AI데이에서도 이미 설정된 시나리오에 AI를 활용하는 사례를 보여주었습니다. 복잡한 샌프란시스코의 교차로를 3D 그래픽 아티스트들이 그리려면 2주가 걸리지만 AI는 단 5분 만에 그려낸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AI 기반으로 데이터를 처리하고 시뮬레이션을 생성하려면 막대한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모빌아이에 따르면 영상, 이미지, 오디오 등 자율주행차가 하루 동안 수집하는 데이터는 4테라바이트에 이릅니다. 자율주행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차량 내 AI 프로세서는 물론, 운행 중인 차량 수백만 대에서 수집되는 데이터의 양을 생각하면 거대한 컴퓨팅 자원이 필요합니다.

테슬라는 현재 엔비디아의 가장 빠르다는 H100 GPU를 1만 개 연결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빠르다는 레오나르도(이탈리아, 1위는 일본의 후가쿠) 슈퍼컴퓨팅 플랫폼보다도 빠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멈추지 않고 테슬라는 자율주행 학습을 위한 GPU D1을 직접 개발하며, 이에 기반한 슈퍼컴퓨팅 하드웨어 플랫폼 ‘도조(Dojo)’를 직접 구축하고 있습니다. 도조는 완성되는 순간 1.1엑사플롭스(초당 100경 번 연산)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테슬라가 보유한 컴퓨팅 플랫폼의 4배 성능에 비용은 불과 6분의 1 수준이라니 또 다른 혁신으로 평가될 듯합니다.

슈퍼컴퓨터 도조(출처: Tesla)

테슬라가 하드웨어부터 컴파일러, AI 모델에 이르기까지 컴퓨팅 플랫폼 전 밸류체인을 통합하는 것은 전체 최적화를 통해 극단의 성능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GPU가 부족해서 엔비디아 칩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 미래 AI 시대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실에서, 테슬라는 자력으로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관할하는 몇 안 되는 AI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태양광발전과 에너지 저장 장치

테슬라는 전기차와 AI 사업 외에도 태양광발전기 설치와 에너지 저장 장치(energy storage system, ESS)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2023년 테슬라 에너지 부문은 총 14.7기가와트시(GWh)의 배터리 ESS를 설치하면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매출 규모로는 아직 자동차 부문의 7% 정도에 불과하지만, 성장 속도로 볼 때 향후 포트폴리오 안에서 중요한 아이템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는 ESS시장이 2030년까지 연평균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테슬라는 시장 상위 5위 안에 드는 핵심 플레이어입니다.

테슬라 에너지의 미래가 기대되는 것은 최근 캘리포니아주 라스롭에 완공했고 중국 상하이에 건설 중인 각각 연산 40GWh 규모의 메가팩 공장들 때문입니다. 이 두 공장은 이미 수년 치 주문이 밀려 있어, 완전 가동될 경우 매출을 현재 규모의 5배까지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 테슬라의 에너지 사업이 특별한 것은 테슬라 전기차를 위해 보급하고 있는 슈퍼차징 네트워크와 ESS, 태양광발전소 시스템을 연계하여 에너지 생태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ESS에 저장해 전기차나 전력 그리드에 공급하는 거래 시스템을 통해 에너지 공급 안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테슬라의 사업은 아니지만 CEO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또 다른 기업 스페이스X와의 연계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미 기가프레스용 알루미늄 합금, 사이버트럭의 스테인리스 외판 등 재료 기술을 스페이스X와의 협업으로 완성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가 2025년부터 2세대 로드스터(스포츠카)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스페이스X와의 협업(로켓 부스터 추정)을 예고했습니다.

스페이스X는 로켓 재사용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고 팔콘9 로켓을 등장시키면서 우주 발사체 제작 비용을 절반 이상 줄여, 2024년 2월까지 이미 5,500개의 스타링크 위성을 우주에 쏘아 올렸습니다. 지표면 전체 영역에서 통신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1만 개를 지구 저궤도에 쏘아 올려야 하고, 스페이스X는 4만 개 이상을 쏘아 올려 지구 저궤도를 뒤덮겠다는 계획입니다.

현재 스타링크의 위성통신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A4 용지 크기의 수신 안테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최근 삼성 갤럭시 안드로이드폰이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와 직접 연결되어 통신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향후 저궤도 위성을 활용한 모바일 통신 사업까지도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수신 장치가 점차 소형화되고 속도도 개선되니 장기적으로는 차량 통신도 스타링크를 활용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테슬라의 에너지 & 운송 생태계(출처: Tesla 2021 Impact Report)

테슬라의 전기차 사업과 밸류체인의 수직 통합, 이어서 AI와 에너지, 위성 통신 사업의 수평 확장 이야기를 글 두 편에 담기 위해서 숨 쉴 틈 없이 여러 주제를 뛰어넘으며 이야기했습니다. 아마도 일론 머스크는 매일매일 새롭고 풀기 어려운 과제들을 마주하며 분주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혁신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머스크의 기행(奇行)으로 보이는 행동과 발언, 그리고 이를 자극적으로 다루는 언론 환경이 이 기업의 묵직한 본질을 가리고 가치를 절하하는 면도 있다고 보입니다.

미래를 선도할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본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갖춰나가고 있는 테슬라의 향후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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